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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제

미얀마 쿠데타 알아볼까요

by 정보 크리에이터_정크 2021. 7. 16.

미얀마 쿠데타

미얀마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새벽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조치들을 실행했다며, 민 아웅 흘라잉 국방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1989 〜 2010년까지 21년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금과 석방을 반복했던 수치 고문은 10년 만에 또다시 구금됐습니다. 특히 2015년 총선 승리로 53년 만에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던 미얀마는 5년 만에 다시 군부 독재 체제로 돌아갈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미얀마는 1962년 네 윈 장군의 쿠데타 이후 53년간의 군부 지배가 이뤄져 온 국가다. 군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1988년 8월 8일 이른바 '8888 항쟁'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아웅산 수치가 민주화 운동의 전면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당시 군부 독재 종식과 미얀마 민주화를 주도한 아웅산 수치는 1989년 첫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1990년 열린 총선에서 수치가 결성한 NLD가 82%의 지지로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키며 수치의 가택연금을 연장했고, 이에 수치는 1989년 이후 몇 년의 휴지기를 포함해 2010년 11월 13일까지 총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수치가 이끄는 NLD가 2015년 치러진 총선에서 상·하원 491석 중 39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53년 만에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2008년 군부정권에서 제정된 헌법에 따라 상·하원 의석의 25%가 군부에 할당됐으며, 국방부·내무부·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 지명권도 군부에 주어졌습니다. 여기에 군부 주도로 제정된 헌법은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해 영국인 남편과 결혼한 수치가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 제한을 뒀습니다. 아울러 헌법 개정은 의원 75%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해 개헌 가능성도 차단하는 등 문민정부로의 완전한 권력이양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일으킨 쿠데타는 앞서 2020년 11월 8일 치러진 총선이 직접적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선거에서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전체 선출 의석 476석 가운데 396석(83.2%)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유권자 명부 860만 명가량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26일에는 선거 부정 의혹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쿠데타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1월 27일에는 특정 상황에서는 헌법이 폐지될 수도 있다는 언급으로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그러다 유엔 및 현지 외교사절단의 우려 표명이 잇따르자 1월 30일에는 헌법을 준수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으나, 이틀 만인 2월 1일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단행했습니다.

한편,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수치 고문 구금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1일 미얀마(버마)의 군부 쿠데타와 관련해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법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난한 데 이어 '즉각적인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며 제재를 경고했습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미얀마의 공식 국호보다 버마라는 옛 이름을 사용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함께 성명 등을 발표할 때는 '미얀마'를 혼용하기도 하지만 미얀마와의 양자 간 현안을 언급할 경우 '버마'를 사용합니다. 현재의 미얀마 국호는 1989년 미얀마 군부가 이전의 버마에서 개칭한 것으로, 수치 고문 등 민주화 세력은 군부 정권이 일방적으로 정한 '미얀마'라는 국호 사용을 꺼려 왔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며 구금된 수치 국가고문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는 2월 6일부터 미얀마 전역에서 시작됐습니다. 2월 7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는 2007년 샤프란 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습니다. 샤프란 혁명은 군정의 급격한 유가 인상에 대항해 불교 승려가 주축이 돼 일어난 시위를 말합니다. 그러다 2월 14일에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양곤 시내에 군 장갑차가 등장하면서 유혈 진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2월 22일에는 양곤은 물론 수도 네피도와 제2도시 만달레이 등 미얀마 전역의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주요 업종 종사자들이 자진 파업을 택해 시위에 참여하는 '22222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22222 시위'의 명칭은 지난 1988년 8월 8일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8888 항쟁'으로 일컬었던 것에서 유래한 용어로 2021년 2월 22일에 들어가는 5번의 2를 가리킵니다. 군부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로 전개된 이날 시위에서 현지 시민들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시위대가 거리를 꽉 채운 집회 영상이나 사진을 게시하면서, #22222Revolution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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